왜적의 침략노선이 노골화되는 시기에 민영환 같이 자결이라는 극한 적인 투쟁을 선택한 우국지사도 많았다. 이 역시 범인(凡人)의 경우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와 참기 어려운 육신의 통증을 겪어야 했던 수감생활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다. 유관 순은 투옥된 뒤 순국할 때까지 약 1년 반 정도 거의 매일 죽음을 맞이 하는 것 같은 수감생활을 하였다. 앳된 18살 소녀 유관순이 이와 같이 참혹한 일을 감내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軍器)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
“왜 제 나라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른 것이 죄가 되느냐?” “왜 평화적으로 아무런 무기를 갖지 않고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해대어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하여 무고한 수많은 목숨을 저리도 무참하게 빼앗을 수 있느냐?” “죄가 있다면 불법적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냐?”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으며, 눈이 있어 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식민지 지배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냐?” “자유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며, 누구도 이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무슨 권 리로 신성한 인간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느냐?”(이정은, 2004: 368) 아우내 장터 시위 39일 뒤인 5월 9일에 열렸던 제1심 판결에서 유관 순이 왜적 재판관에게 주장한 말들이다. 나이도 어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살벌한 침략자들의 법정이었지만, 유관순은 일호(一毫)의 두려움 도 없이 당당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나라를 되찾기 위 한 자신의 행동은 옳은 것이니 죄가 될 수 없고, 남의 나라를 도적질한 너희 왜적들이 바로 범죄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정연한 논리로 오히려 왜적 재판관들을 질타하였던 것이다.
유관순의 이러한 언행은 불의(不義)를 거부하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의감은 옳은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 야 한다는 대의정신(大義精神)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대의 정신으로 뒷받침되었던 불의를 거부하는 유관순의 정의감은 거칠 것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관순은 자신이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와 국가 또는 정의의 세계에 대해 헌신하고 있다는 확신 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관순 열사 애국정신의 기저와 교육적 의의 - 이달우 (한국교육철학회, 2010) |